※저스티스로드 세계관 기반. 슈퍼맨이 대통령인 루터를 죽이고 독재하는 세계입니다. 캐릭터의 죽음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사항에 민감하신 분께는 열람을 권하지 않아요.



저스티스로드 세계관 기반. 슈퍼맨이 루터를 죽이고 철권통치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를 배경으로 슈퍼맨이랑 배트맨이 슬슬 대립하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브루딕은 서로가 서로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관계인 것이 좋다. 더불어 딕은 어린시절의 우상이었던 슈퍼맨에 대한 믿음을 아직 저버리지 않고 있었으면 좋겠다. 숲스가 조만간 철권통치를 그만둘 거라 생각하며 그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고담이고 블뤼드헤븐이고 유명한 빌런들은 싹 정리당했지만 그 대신 여기저기서 슈퍼맨의 독재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겠지. 배트맨은 케이브에 틀어박혀서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하며 슬슬 슈퍼맨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는데, 딕은 반대로 메트로폴리스로 찾아가서 어떻게든 숲스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로이스와 지미가 반군세력에 가담한 것을 발각당했음. 슈퍼맨은 무척이나 분노하면서도 슬퍼하며 두사람을 가뒀음. 안그래도 최근 배트맨을 위시한 저스티스로드 멤버들이 자신과 거리를 두는게 느껴져서 심란하던 차였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속상했음. 자신은 단지 분쟁 없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뿐인데.

물론 그에게는 광신적으로 그에게 복종하는 군대도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의 통치를 잘 따라주고 있었음. 문제는 그 대부분의 시민들이 단지 겁에질려서 기계적으로 명령에 따를 뿐이라는 거였지만.

진심으로 자신의 이상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몇 없다는 것을 머리좋은 숲스가 모를리 없었음. 한편으로는 울적했고, 한편으로 외로웠음. 안그래도 자신은 외계인이고 이방인이었음. 항상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살아야 했었는데, 그러한 숲스가 이 지구에 소속된 일원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동료들과 시민들의 애정과 응원이었던 거임. 그것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배척과 공포가 자리잡자 그만큼 숲스는 고독해졌음. 그리고 그러한 숲스 곁에 딕이 있었음.

 

딕은 다른 로드원들과 달리 숲스를 멀리하거나 피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슈퍼맨의 철권통치를 광신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았음. 딕이 숲스를 대하는 태도는 예전과 변함이 없었음. 언제나 그랬듯이 스스럼없이 숲스에게 다가와서 신뢰 가득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거임.

딕은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 걱정할 필요 없는 그의 안부를 묻고, 식사는 잘 하고 있는지 잠은 잘 자고 있는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 유일한 사람이었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의 선함과 사회의 자정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숲스가 더이상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기를. 저스티스로드 멤버들 및 각국의 정상들과의 대화를 통해 지금의 이 비정상적인 독재를 끝내주길 간청하는 유일한 인간이기도 했음. 나는 능력도 없고 보잘것 없는 일개 인간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나라도 괜찮다면 당신 곁에서 무슨 일이든 돕겠다고. 배트맨도 당신이 마음이 돌리길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이 예전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그에게 연락하면 그는 언제든 달려와줄 거라고.

하루종일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분쟁들을 처리한 로드숲이 저녁 늦게 제 요새로 돌아오면, 그 때까지 안 자고 기다리던 딕이 따스한 손길로 그를 맞이하곤 했음. 그러면 하루종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지내던 숲스의 표정도 부드럽게 풀리는 거임. 샤워를 하고 나와서 딕이 꺼내놓은 옷으로 갈아입고. 딕과 함께 식사를 하고 소소한 대화를 하고. 두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는 언제나 은근슬쩍 화제를 돌리는 딕에 의해서 회유와 간청과 설득으로 끝나곤 했음. 매번 똑같은 패턴이었지만 숲스는 그게 싫지 않았음. 오히려 즐겁고 좋았음. 자신이라고 해서 인간에게 잔혹해지고 싶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름의 확신을 갖고 철권통치를 시작했지만 가끔씩은 자신이 올바른 길로 가고있는지 회의감이 들곤 했음. 그리고 가끔씩 정말로 인간에게 실망할 때,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끔찍한 범죄를 목격했을 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조차 놓아버리고 싶을 때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설득하는 딕의 목소리를 듣고있노라면 아직은 인류를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임.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숲스는 딕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했음. 결국 독재를 그만두라는 딕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딕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숲스를 설득하려 했음.

 

한편 고담에 틀어박힌 배트맨으로서는 로드숲 곁에 머무르는 딕이 무척이나 걱정되었음. 매일 연락을 주고받긴 하지만, 그래도 워낙에 세월이 수상하니까-_-;;; 저항군들이 슬슬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고, 숲스와 그 주변의 사람들은 당연히 최우선순위의 표적이었음. 배트맨은 딕을 걱정하며 어서 고담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딕은 언제나 괜찮다는 말로 거절했음. 당신도 알지 않냐고. 아무리 저항군이 애를 써봤자 숲스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없다고. 지금의 상황을 끝내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방법은 숲스를 설득해서 그가 스스로 이 독재를 끝내게끔 하는 것뿐이라고. 당신이 더이상 숲스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면 나를 믿어달라고.

그러면서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이길, 요즘 슈퍼맨이 티는 안 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아직까지는 그래도 스스로 인류를 보호하고자 이 모든 일을 하고있지만, 저러다가 정말로 안 좋은 선택을 하게될까봐 걱정된다고. 지금의 슈퍼맨을 내버려두고 떠나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거였음.

결국 배트맨은 한숨을 쉬며 그렇다면 한 달만 더 시간을 주겠다고. 그 이상으로 길어지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들고일어나는 저항세력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 거라고. 한 달 후에는 반드시 고담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함. 딕은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이 요새만큼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통신을 끊었음.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딕은 그 한달의 유예기간 동안에도 슈퍼맨을 설득할 수 없었음.

 

사실 배트맨은 저항군이 전혀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었음. 국지적인 소요는 금방 진압되었고, 각 조직들은 긴밀하게 연계하지 못한 채 각개격파당하기 일쑤였음. 이런식으로는 민간인들과 시민들의 희생만 커질 것이 뻔했음. 브루스는 슈퍼맨에게 대항하는 저항군을 규합해서 전면적인 게릴라전을 벌이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음.

딕도 그러한 브루스의 생각을 어렴풋이 알고있었음. 그것은 딕이 굳이 슈퍼맨의 곁에 머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음. 스스로를 인질삼아 브루스가 저항군측에 가담하는 것을 억제시키는 거임. 슈퍼맨과 배트맨 두사람이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하면 그 때는 정말로 평화롭게 끝내기는 요원해질 테니까. 가족이자 연인인 브루스도, 멘토이자 우상인 숲스도, 어느 한 명이라도 다치는 건 원치 않았음. 누가 보면 순진하다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딕은 누구도 상처받지 않길 바랐음.

하지만 성과 없이 브루스와 약속한 한 달은 지나가버렸고, 이젠 고담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음. 요새들어 신경이 날카로워진 듯한 슈퍼맨이 걱정되긴 했지만. 연인인 브루스 곁을 지나치게 오래 떠나있기도 했으니까. 일단 고담에 들러서 브루스와 대화를 해보고 다시 돌아오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딕은 숲스에게 고담에 며칠간 다녀오겠다고 얘기했음.

슈퍼맨은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딕의 말을 묵살했음. 요즘 저항군들이 기승이라고. 요새를 나가는 건 위험하다고. 딕은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음. 나는 배트맨에게 배우며 당신을 보고 자란 어엿한 히어로라고. 쉽게 납치당하거나 하진 않을테니 걱정 말라고. 어차피 브루스가 배트윙을 보내주기로 했으니 위험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고. 정 걱정되면 당신이 나를 고담으로 데려다주면 되지 않냐고. 케이브에 들러서 겸사겸사 브루스랑 대화도 좀 해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지만 숲스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딱 잘라 대답했을 뿐이었음. 안 돼.

그리고 그제서야 딕의 얼굴에 웃음기가 조금 가셨음.

 

딕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이유를 물었음. 숲스는 밖은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 네가 떠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대답했음. 단정한 얼굴은 언제나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인간의 것에 비해 지나치게 새파란 눈동자는 웃고있지 않았음.

딕은 처음으로, 어째서 사람들이 슈퍼맨을 두려워하는지 실감했음. 등줄기에 오싹 오한이 들었음. 긴장으로 손끝이 차가워졌음. 딕은 얼어붙은 채 숲스를 올려다보았음. 흉터 하나 없이 커다란 손이 딕의 머리카락 끝을 가볍게 매만졌음.

다시 말하지만, 네가 다치는 건 바라지 않는단다. 안전해질 때까지 이 곳에 머무르렴.

 

딕이 고담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메트로폴리스에 억류당하자 배트맨은 즉시 뱃가 일원들을 모아 딕의 구출작전을 세우기 시작했음. 그리고 동시에 저항군들을 물밑으로 지원하기 시작함.

일주일에 두 번, 10분간 이루어지는 딕과의 화상통화엔 언제나 슈퍼맨이 감시하듯 함께했음. 그래서 브루스와 딕은 짧은 통화 중간중간에 암호를 섞어가며 진짜 대화를 이어가야 했음. 딕은 내가 어떻게든 슈퍼맨을 설득할테니 제발 섣부른 생각 하지 말라며 브루스를 만류했음. 물론 브루스는 딕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음. 애초에 한 달이고 자시고 시간을 줄 게 아니라 당장 돌아오라고 했어야 했는데. 싫다고 거부하면 직접 끌고오기라도 했어야... 아니, 처음부터 딕이 메트로폴리스에 머무르도록 허락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브루스로서는 안그래도 슈퍼맨의 독재를 그냥 방관할 수 없다는 사실에 더해서 딕을 되찾아야 한다는 명분까지 더해지자 더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음. 그리고 슈퍼맨 역시 배트맨이 어떻게 반응할지 대충 예상하고 있었음. 두사람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함.

저스티스로드의 멤버들 및 각 도시의 히어로들이 각각의 편에 갈라섰음. 계엄령이 선포되었음. 이제는 딕이 슈퍼맨을 설득한다 해도 쉽게 상황이 끝나지 않을 거임. 그리고 아무리 배트맨이 대단한 전략가라 한들, 전지전능한 외계인 앞에서 바람앞의 등불일 것이 자명했음.

딕은 걱정으로 미쳐버릴 것 같았음. 브루스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딕을 겁먹게 했음. 더 안좋은 것은 브루스가 만약에 죽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그 순간 그의 곁에 있지도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었음.

딕은 슈퍼맨에게 울면서 애원했음. 제발 싸우지 말라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브루스를 해치지 말아달라고. 무엇이든 하겠다고.

그리고 그 눈물이 슈퍼맨 본인조차 스스로에게 있는지도 몰랐던 질투를 자극했음.

 

결과적으로 배트맨은 슈퍼맨의 손에 죽었음. 가장 규모가 크고 체계적이었던 고담의 저항군은 배트맨과 함께 말살당했음. 오라클과 로빈을 위시한 저항군 간부 몇명만이 뿔뿔이 흩어진 채 목숨을 건졌을 뿐이었음. 반란군을 진압하는데는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음.

새벽에 옷을 차려입고 요새를 나선 슈퍼맨은 저녁식사 시간이 되기도 전에 돌아왔음. 진한 화약냄새와 쇠비린내가 났지만 로드숲의 외견은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기만 했음. 단지 흰 망토 끝자락에 작은 핏자국이 딱 한방울 튀어있었을 뿐. 창백하게 질린 딕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음.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덜덜 떨리는 턱 끝에 방울졌음. 슈퍼맨이 안쓰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딕의 뺨을 조심스레 닦아주었음.

 

딕은 만 하루를 꼬박 앓았음.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도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음. 먹는 족족 다 토해내고 물만 간신히 몇 모금 마실 수 있었을 뿐. 이중 삼중의 검문을 거쳐 올라온 의사가 링겔을 처방했음.

의사는 그대로 요새에 머무르며 딕의 건강을 돌보게 되었음. 며칠 사이에 수척하게 살이 빠져버린 딕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눈물로 보냈음. 멍하게 눈만 깜박이면서 울다가 기절하듯 잠들면 열시간이고 열두시간이고 죽은 듯이 잠만 잤음. 슈퍼맨은 그러한 딕의 곁을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음. 고담에 거점을 두었던 최대규모의 저항군이 제압된 덕분인지 소소한 소요가 요 며칠간 뜸해서 다행이었음. 슈퍼맨은 내내 딕의 옆을 지키며 대답 없는 딕에게 말을 걸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고 손발을 주물러줬음. 딕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러고도 며칠이 더 지난 후였음.

어느 날, 딕은 퀭하게 살이 빠진 얼굴로 물끄러미 숲스를 바라보았음. 초점없이 멍한 시선이 아니었음. 깜박거리는 파란 눈동자는 분명히 슈퍼맨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음. 딕은 피곤한 듯 금세 눈을 다시 감고 잠들었지만, 숲스는 딕이 뭔가 반응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었음.

그리고 다음날 깨어난 딕은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려주었음. 일으켜주세요. 앉고 싶어요. 배가 고파요. 오랫동안 곡기를 끊었으므로 처음에는 주스나 유동식을 조금만 먹을 수 있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었음. 딕은 음식을 가져다주는 슈퍼맨에게 약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인사했고, 슈퍼맨이 딕의 손발을 주물주물 마사지 해줄 때에는 발그레하게 뺨을 붉히기도 했음. 평소대로 딕의 손발을 주물러주던 숲스는 딕이 인형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어제까지와는 달리 부끄러워하며 손을 슬쩍 빼려고 하자, 그제야 당황하며 딕에게 사과했음. 미안하다고.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그냥 네 손이 차가워서... , 아니. 그게 아니라. 싫었다면 미안하다고.

어쩔 줄 몰라하며 사과하는 숲스에게 딕은 작게 괜찮다고 대답했음. 괜찮아요. 당신 손 따뜻해서 기분 좋아요. 그냥 좀.... 부끄러워서. 요새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딕이 개미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지난 며칠간 딕의 몸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손수 옷까지 갈아입혔던 슈퍼맨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였음. 두 사람이 침대에 뻘쭘하니 마주앉은 채 어색한 정적이 흘렀음. 그리고 숲스에겐 다행히도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딕이었음. 나 씻고 싶은데. 아직 좀 힘이 없어서. 미안하지만 당신이 도와줄래요?

슈퍼맨은 잠시 멍청하게 딕을 쳐다보고 있다가 후다닥 일어나서 욕실로 갔음.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우고 딕을 부축해 욕실로 데려와서는 옷을 벗겨 욕조에 앉히는 손길은 조심스러웠음. 처음에는 맨정신인 딕의 옷을 벗긴다는 것에 약간 주저했지만, 딕 본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제 몸을 숲스에게 맡겼으므로 망설임은 길지 않았음.

욕조에 들어간 딕은 금방 어지러워하면서 흐물흐물 물 속으로 미끄러졌음. 딕은 약간 민망해하면서 숲스에게 미안하지만 같이 욕조에 들어와주면 안되겠냐고 부탁했고, 숲스는 욕조에 들어와 제 가슴팍에 딕을 기대게 하고, 딕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제 팔로 단단히 끌어안았음. 딕은 약한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혔음.

까맣고 결 좋은 머리카락이 슈퍼맨의 넓은 어깨 위로 흩어졌음. 슈퍼맨은 저에게 기댄 딕을 찬찬히 살폈음. 가벼웠음. 슈퍼맨에게 가볍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 아무리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지나치게 가벼웠음. 며칠간 살이 확 빠져버린 덕분에 삐죽 드러난 턱선과 목울대가 도드라져 있었음. 안그래도 군살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었는데 홀쭉해진 몸이 안타까웠음. 그나마 뼈대 자체가 균형잡힌 체형이라서 그렇게까지 보기 흉하진 않은 게 다행이랄까.

배트맨과의 싸움은 슈퍼맨으로서도 꽤나 아픈 경험이었음. 한 때 뜻을 같이했던 동료를 제 손으로 죽였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배트맨이 평범하게 피와 살로 된 인간에 불과했기에, 그를 죽이는 것이 슈퍼맨에게는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음. 다시 말하지만, 고담의 저항군을 진압하는 데에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었음...

딕의 맨몸을 어루만지며 멍하니 생각을 이어나가던 슈퍼맨은 제 품안에서 약하게 꿈틀거리는 기척에 정신을 차렸음. 몸을 살짝 튼 딕이 슈퍼맨을 올려다보고 있었음. 병색이 완연한 흰 얼굴이 처연했음.

슈퍼맨은 고개를 숙여 딕의 입술에 제 것을 겹쳤음. 딕은 잠깐 몸을 굳히는가 싶더니 이내 고분고분하게 슈퍼맨의 품안에 안겨왔음. 따끈한 물이 찰박거리면서 욕조 밖으로 넘쳤음. 강대한 크립토니안에게 딕의 무게는 지나치게 가벼웠음.

 

그 날 이후로 딕은 조금씩 식사량을 늘려갔음. 일어나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조금씩 방 안을 거닐기도 했음. 딱히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렸던 것은 아니었기에 잘 먹고 잘 쉬고 잘 움직이기 시작하니 회복하는건 금방이었음. 딕은 금방 건강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음.

항상 딕의 곁에 머무르던 슈퍼맨은 딕이 회복되고 나서도 자연스레 한 침대를 쓰게 되었음. 처음 이틀간 숲스는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음. 제 팔을 베고 제 가슴팍에 손을 얹고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딕의 기척에 온 신경이 곤두세워졌음. 옅은 바디샴푸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음. 그냥 욕실에 있는 것을 같이 쓰고 있을 뿐인데, 딕의 체향과 섞인 향기에선 독특한 단내가 났음.

잠꼬대를 하며 살짝 뒤척이는 소리. 제 가슴팍에 얹어진 손이 꿈이라도 꾸는지 약하게 움찔거리다가 다시 잠잠해지는 느낌. 고르고 안정적인 숨소리. 산소로 가득찬 폐포가 부풀어오르고 심장이 규칙적으로 고동치는 소리. 숲스는 눈을 감고 딕으로부터 들리는 소리를 음미했음. 이 소리를, 이 체취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음..

슈퍼맨과 딕 사이에 좀 더 성적인 접촉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난 밤이었음. 초저녁부터 곤히 잠들었던 딕이 깼고, 제 옆의 슈퍼맨이 깨어있다는 것을 눈치챘음. 물론 슈퍼맨에게는 매일매일 수면을 취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같이 자겠답시고 옆자리에 누워놓고 깨있는 건 영 이상하니까. 딕은 잠이 오지 않냐고 숲스의 귀에 속삭이며 물었고, 슈퍼맨은 대답하지 않고 쓴웃음만 지었음. 그리고 잠시 후에 딕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오... 하는 표정을 지었음.

미안해요. 내가 컨디션이 이모양이라 신경을 못 썼네요. 진짜로 미안. 아직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수척한 얼굴이었지만, 장난기를 담은 표정은 예전과 똑같았음.

숲스가 뭔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딕의 손이 꾸물꾸물 슈퍼맨의 옷 속을 파고들었음. 숲스는 당황하며 딕을 저지하려 했지만 말로만 하지 말라고 했을 뿐, 차마 부서질 것처럼 마른 손목을 제 손으로 붙들어 떼어내진 못했음. 그리고 익히 예상했듯이 하지말라는 말 한마디로 딕을 말리는 것은 무리였음.

쉬잇, 가만히 있어요. 내가 지금은 몸상태가 영 아니라서 손으로밖에 못 해주지만, 다음주 주말쯤이면 훨씬 근사한 걸 해줄 수 있을테니까요. 장난스럽게 속삭이며 귓가에 숨을 후 불어넣는 것만으로 딕은 슈퍼맨을 무장해제시켰음.

당신도 나를 원한다는 거 알아요. 지난 이틀 밤 내내 참기만 했다니 당신도 참 바보같네요. 당신의 그런 면이 싫은 건 아니지만 말예요.

슈퍼맨은 그날 밤 어떤 것이 더 좋았는지 고를 수 없었음. 딕의 환상적인 손기술이었는지, 아니면 제 귓가에 애교스럽게 속살거리는 목소리였는지. 어쨌든 그날 이후로 로드숲과 딕은 세간에서 말하는 그대로의 의미에서 침대를 같이 쓰게 되었음.

 

절친한 동료였던 배트맨을 잃은 것은 뼈아팠지만, 그대신 딕을 얻었음. 덕분에 슈퍼맨은 그만큼 멘탈을 안정시킬 수 있었음. 루터를 죽이고 행동노선을 바꾼 이래 주변인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면서 극한의 스트레스를 겪었을 때에도 제 곁에 있어줬던 딕이었음. 물론 마지막 몇 개월 동안은 고담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을 숲스가 강제로 억류했던 것이지만. 어쨌든 몸과 마음으로 딕과 맺어지고 나니 더이상 고민하거나 회의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음. 슈퍼맨은 묵묵히 범죄자들을 잡아넣고 지구 곳곳의 분쟁들을 정리하고 저항군들을 진압하며 시스템이 안정되도록 최선을 다했음. 그리고 매일 저녁 딕이 기다리고 있는 요새로 돌아왔음.

건강해진 딕은 예전처럼 밝아진 모습으로 숲스를 맞이했음. 더이상 철권통치를 그만두라고 설득하려 들지도 않고, 그저 숲스가 하는 모든 일들을 지지해주었음. 그래서 오히려 슈퍼맨은 더더욱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세워 그 규칙 하에 문제들을 처리했음. 가끔 적극적인 폭력을 활용하고 시민들을 좀 더 철저하게 통제할 것을 권하는 측근들도 있었지만 슈퍼맨은 단칼에 거절했음. 쉬운 길을 택하고자 하는 유혹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음.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연인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았음. 하루하루가 충만했음.

딕은 하루종일 요새 안에서 지냈음. 외향적이고 활발한 성격의 딕이 저렇게 집안에서만 지내는 것은 그닥 즐겁지 않을텐데도 그러했음. 가끔씩 슈퍼맨이 밖에 나가고싶지 않냐고 슬쩍 물어봐도 웃으며 고개를 젓기만 했음. 그러면서 필요한 건 이 안에 다 있는데 굳이 위험한 바깥으로 나가서 당신을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대답했음.

슈퍼맨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음. 그러한 숲스의 기색을 살피던 딕이 덧붙였음. 내가 정 신경쓰인다면 당신과 함께하는 산책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물론 한가롭게 공원을 걷는 거 말고, 기왕이면 오랜만에 구름 위를 날고싶다고.

살살 웃으며 애교를 떠는 딕에게 못해줄 게 뭐가 있겠음. 슈퍼맨은 딕 말마따나 오랜만에 딕을 안고 한참을 비행했음. 그리고 내친 김에 동물들이 뛰노는 세렝게티 초원까지 날았음. 동물을 좋아하는 딕은 예상한대로 무척이나 즐거워했음. 숲스의 팔에 안겨 소리높여 웃는 딕의 웃음소리가 하늘에 울려퍼졌음. 그리고 요새로 돌아온 그날 밤, 딕은 슈퍼맨에게 당신의 아이를 갖고싶다고 고백했음.

슈퍼맨은 온갖 감정으로 벅차올라 반응조차 보일 수 없었음.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기뻤음. 하지만 어떻게? 딕은 남잔데? 숱하게 몸을 섞었으니 새삼 확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데? 굳이 엑스레이 비전으로 확인할 필요도 없이 딕은 남성이었음. 그것도 매우 훌륭한. 의아해하는 숲스에게 딕이 조금 부끄러워하며 설명했음. 웨인생명공학에서 개발하던 기술이 있다고. 크립토니안인 당신의 아이를 잉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보고 싶다고. 굳이 눈에 보이는 증거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고싶은 것뿐이니까. 시도해보는 것만이라도 나름 의미있는 일 아니겠냐고.

웨인사의 이름을 듣는 순간 슈퍼맨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그것도 잠시였음. 애초에 누굴 위해서 개발하기 시작한 기술이면 어때. 지금은 슈퍼맨 본인이 딕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니겠음? 슈퍼맨은 뇌리에 떠오른 브루스의 얼굴을 애써 지웠음. 그리고 딕을 끌어안고 딕의 두 손을 모아 입맞췄음. 네 말이 맞다고. 설령 아이가 생기지 않더라도 네가 날 위해서 우리들의 아이를 가지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일이 될 거라고. 당연히 찬성이라고. 그리고 고맙다고. 숲스의 대답을 들은 딕은 뺨을 물들이며 슈퍼맨을 끌어안았음.

 

시술은 오래 걸렸음. 인공 장기를 몸 안에 안착시키는 작업이 일년 반에 걸쳐서 천천히 진행되는 동안, 딕은 호르몬 불균형을 필두로 숱한 고생을 겪어야 했지만 의연하게 견뎌냈음.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는 슈퍼맨이 더더욱 안절부절 못할 지경이었음.

최고 수준의 의료진들은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했음. 정기적인 진료와 시술을 받을 때마다 딕은 발랄한 농담으로 딱딱한 분위기를 전환하려 애썼음. 잔뜩 표정을 굳히고 선 숲스를 진료실 밖으로 밀어내며 당신 때문에 사람들 잔뜩 긴장해있는 거 안 보이냐고, 어차피 엑스레이 비전으로 밖에서도 다 볼 수 있을테니까 괜히 분위기 썰렁하게 만들지 말고 빨리 나가라고 밉지 않게 구박하기도 했음.

결국 인공 자궁이 순조롭게 안착하고 부작용 테스트까지 마친 후, 슈퍼맨과 딕은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었음.

 

처음부터 예상은 했었지만, 아이는 쉽게 생기지 않았음. 자연적인 모체가 아닌 인공자궁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인간과 크립토니안 사이의 이종족 결합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음. 그게 아니더라도, 자연적인 남녀간의 커플 사이에서도 불임은 있기 마련이니까. 이유는 알 수 없었음.

숲스는 굳이 아이가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제 자식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내심 기대하고 들떴음은 부정할 수 없었음. 제 행성이 멸망한 이후로 크립토니안이라고는 자신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진 않았음. 실망할 수 없었음. 실패를 거듭할수록 딕이 우울해했기 때문이었음. 숲스는 제 실망감은 접어두고 딕을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

그러한 슈퍼맨도 딱 한 번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음. 거듭된 실패로 침울해하던 딕이 어쩌면 내가 당신을 이렇게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 내 욕심인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당신의 아이를 낳아줄 다른 여자를 찾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음.

숲스는 두사람이 함께 지내게 된 이래 처음으로 딕에게 미친듯이 화를 냈음. 누가 그깟 아이 따위 필요하다고 했냐고. 애초에 나는 멸망한 행성의 유산일 뿐이라고. 2세따윈 기대한 적도 없다고 언성을 높이며 소리를 질렀음. 딕은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미안하다고 울기만 했고, 그것이 슈퍼맨의 화를 더더욱 부추겼음.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거냐고. 네 입으로 말해보라고. 슈퍼맨이 추궁하듯 윽박지르자 딕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당신에게 아이를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대답했음. 그리고 더듬거리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슈퍼맨은 그게 아니라며 화를 냈음. 네가 미안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니라고. 필요도 없는, 애초에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서 나로 하여금 다른 여자에게 가도록 종용한 것이 네 잘못이라고. 그러면서 덧붙이길 애초에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고. 네가 이렇게 우울해할 줄 알았으면 2세를 갖는 계획에 찬성하지 않았을 거라고 냉정하게 잘라 말했음.

슈퍼맨은 만류하는 딕을 뿌리치고 호르몬 앰플과 각종 유도제와 치료제를 몽땅 쓸어서 박살내고 히트비전으로 태워버렸음. 그리고 주저앉아 우는 딕을 침실로 끌고 들어가서는 처음으로 싫다고 저항하는 딕을 강제로 잡아누르며 밤새 거칠게 안았음.

 

밤새 시달린 딕은 새벽이 되어서야 숲스에게 풀려났음. 파리한 얼굴로 기절하듯 잠든 딕의 얼굴을 슈퍼맨이 조심스레 손 끝으로 쓸었음. 수척해진 모습이 속상했음. 화를 내려던 게 아니었는데. 딕을 비난하듯 몰아붙인 스스로가 한심했음.

솔직히 말하면 한 때는, 그러니까 루터가 플래시를 죽이고 자신이 루터를 죽이기 전의 어느 과거에는 슈퍼맨도 단란한 가정을 꿈꿨던 적도 있었음. 그는 로이스를 사랑했고, 그녀와 결혼해서 아기를 갖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음.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확실히 결심을 굳혔음. 딕이 아닌 그 누구와도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았음. 어차피 자신은 크립토니안이니 지구인과의 사이에 혼혈이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딕이 아이를 가지면 좋은 거고, 아니면 그냥 그뿐인 거임. 크립토니안이라는 종이 자신을 마지막으로 멸종된다면 그게 운명인 거겠지.

로드숲은 창백한 딕을 끌어안았음. 내내 슈퍼맨의 거구에 짓눌린 채 시달린 몸이 안쓰러웠음. 체온이 낮고 숨소리가 약했음. 어쩌면 내일은 하루종일 앓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슈퍼맨은 온몸으로 딕을 끌어안고 제 몸의 체온을 약간 높였음. 그리고 딕의 숨소리와 심장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였음.

예상대로 딕은 다음날 하루종일 침대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음. 슈퍼맨은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지극정성으로 딕을 돌봤음.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전적으로 딕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약속했음. 딕이 임신을 계속 시도하고 싶다면 하는거고 이제 그만하길 바라면 그만두겠다고. 나에게는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네가 힘들어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얘기했음.

딕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몇 번 더 시도해보고 싶다고 대답했음. 솔직히 나도 힘들다고. 하지만 나중에 후회를 남기고 싶진 않다고. 그러니까 좀 더 해보겠다고. 그 대신 내가 힘들어하면 당신이 나를 위로해달라고. 슈퍼맨은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음. 다 받아줄 테니까 너도 힘들면 혼자서 참지 말고 나한테 꼭 얘기해달라고. 그러면서 슈퍼맨은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여자 얘기는 꺼낼 생각도 하지 말라고 덧붙였음. 딕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혀를 쏙 내밀면서 밉지 않게 눈을 흘겼음. 절대 안 해요. 밤새 그렇게 혼났는걸.

그리고 마침내 아기가 생겼을 때, 둘은 무척이나 기뻐했음. 얼마나 기뻐했냐면 의료진들이 보는 앞에서 둘이 얼싸안고 십여분간 말한마디 안한 채 눈물만 흘릴 정도로.

 

로드숲은 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하루종일 딕의 곁에만 붙어있고 싶어했지만 딕이 말렸음. 그러지 말라고. 태어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달라고.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로드숲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음. 하필 요 몇년간 잠잠하던 레지스탕스가 요 근래에 기승을 부리고 있었음.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슈퍼맨은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야 했음.

저항군을 색출하기 위한 통제와 수색이 심해졌음. 초긴장상태의 메트로폴리스는 점점 경직되어갔음. 딕은 자주 병원에 들러 몸 상태를 체크했음. 인공자궁을 이식한 남성임신 자체가 흔치 않은 케이스인데다가 평범한 인간도 아닌 이종족간의 혼혈이었음. 슈퍼맨은 부지런히 저항군을 진압하러 다니는 틈틈이 북극에 있는 연구실에 들러 임신과 출산에 관한 크립톤의 기록을 꼼꼼히 체크했음. 임신은 무사히 초기를 지나 순조롭게 중반기로 접어들고 있었음. 그리고 그 와중에 딕이 저항군 세력에 납치당함.

슈퍼맨은 단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았음. 특히 딕의 일에 한해서라면 더더욱 그랬고, 딕이 임신한 이후로는 두말할 나위조차 없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고가 발생한 것은 내부의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음. 단지 슈퍼맨은 몰랐던 것은 그 내부의 배신자가 다름아닌 딕 본인이라는 사실이었을 뿐.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로드숲이 브루스를 죽인 순간, 딕 역시 어느 한 부분이 망가져버린 거였으면 좋겠다. 며칠간 정줄 놓고 울기만 한 딕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머릿속이 복수로 가득차서 반쯤 미쳐버린 상황이었던 것이 옳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로드숲이 마음을 돌리고 독재를 그만둘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 믿음을 배신당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연인을 잃어버린 거임. 하다못해 브루스의 최후를 곁에서 지키지도 못했지. 딕에게 남은 건 섬뜩한 원한밖에 없었음.

하지만 자신이 뭘 할 수 있겠음? 인간 중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배트맨조차 슈퍼맨에게 끔살당했는데. 반란이 진압되기까지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지. 그 어떤 무기로도 흠집 하나 낼 수 없는 외계인에게 크립토나이트도 없는 자신이 무슨 복수를 할 수 있겠음. 복수는커녕 슈퍼맨에게 억류나 당해서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딕은 슈퍼맨이 딕에게 한 짓을 그대로 돌려주기로 결심함. 딕의 연인을 죽였으니 슈퍼맨의 연인도 죽어야 공평하지. 딕은 숲스가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에서의 관심을 갖고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음. 예전부터 어렴풋이 느껴왔던 낌새는 슈퍼맨이 딕을 고담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은 순간 좀 더 확실해졌음. 하긴, 그럴만도 하지. 로이스는 슈퍼맨이 철권통치를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그로부터 등을 돌렸음. 배트맨 외 몇몇 저스티스로드의 멤버들이 그러했듯이.

슈퍼맨은 그 자신의 강함과는 별개로 점점 고립되고 있었고, 마음을 나눌 상대를 간절히 필요로 했음. 그런 상황에서 변함없이 제 곁에 머무르는 딕의 존재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을 거임.

 

슈퍼맨이 정말로 딕을 사랑하게 될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음. 그것도 보통의 사랑으로는 의미가 없었으니까. 최소한 딕이 브루스를 사랑했던 것만큼,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사랑이어야 했음.

자신이 그 정도로 슈퍼맨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런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어차피 딕으로서는 가진 패가 없었음. 이거라도 해 보고 아니면 죽어버리지 뭐. 기왕이면 제 죽음으로써 조금이라도 슈퍼맨에게 심리적인 타격을 주고 싶었음.

딕은 이대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고 숨도 쉬지 않은 채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은 유혹을 간신히 떨쳐내며 몸을 추슬렀음. 아직은 아니었음. 제가 지금 죽어봤자 슈퍼맨은 키우던 강아지가 죽은 것만큼의 슬픔밖에 느끼지 못할 테니까. 딕은 물만 마셔도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억누르며 억지로 유동식을 먹고 몸을 움직였음.

곡예사로서 무대에 오르던 어린시절부터 고담에서 자경단으로 활동하며 이중생활을 영위할 때까지 거의 평생에 걸쳐 갈고닦은 연기실력이 빛을 발했음. 중요한 것은 억지로 가장하지 않는 거였음. 로빈일 때도, 나이트윙일 때도, 딕 그레이슨일 때도, 딕은 언제나 딕 자신이었음. 어설프게 꾸며서 연기해봤자 저 강대한 외계인의 눈을 속일 수 없겠지.

다행스럽게도 딕은 원래 슈퍼맨을 좋아했었음.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우상처럼 따랐었음. 철권통치를 시작하고 고독해하는 슈퍼맨을 감히 일개 인간 주제에 연민했었고, 그를 차마 내버려둘 수 없어서 연인인 브루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에 머물렀었지. 그 선택으로 인해 브루스의 죽음조차 지키지 못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어쨌든 원래 애착을 갖고 있었던 상대였기에, 증오심만 살짝 감추면 그를 사랑하는 연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음. 증오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감춰질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희한할 정도로 가능했음. 어쩌면 브루스가 죽는 순간 딕의 어떤 부분도 같이 죽어버린 것인지도 모름. 마치 기계라도 조립하는 것처럼 감정이라는 것의 어떤 한 조각을 임의로 끼웠다 뺐다 하는 것이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 같았지만. 아무려면 어때. 딕은 최선을 다해서 슈퍼맨을 사랑하는 연기를 했음. 어쩔 때는 정말 한껏 몰입해서 이대로 이 감정에 휩쓸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꼬리를 물듯이 브루스가 죽었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음.

 

저녁시간이 채 되기도 전이었지. 느즈막한 여름해가 기울어져 하늘이 금빛 노을로 물들고 있었음. 그리고 슈퍼맨의 새하얀 망토자락 끝에 딱 한방울 떨어져있던 누군가의 핏자국. 브루스를 죽이는 것이 슈퍼맨에게 얼마나 쉽고 하찮은 일이었을지를 생각하면 우스워서 기가막힐 지경이었음. 누군가의 것일지도 모를 그 한방울의 피. 그것만 생각하면 머릿속이 서늘하게 가라앉았음.

슈퍼맨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딕이 몇 번이나 다잡았던 각오와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쉬웠음. 슈퍼맨은 이방인이었고, 이종족이었음.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환호를 한 몸에 받던 시절조차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음. 그리고 딕은 딕 자신이 외로운 사람임과 동시에 어두침침한 케이브에서 고독감을 벗삼아 지내던 브루스와 십여년을 함께한 사람이었고, 결국에는 어둠의 기사를 밝은 세계로 끌어낸 장본인이었음. 외로운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잘 알았음.

그래서 딕은 슈퍼맨이 원하는 것을 줬음. 브루스에게 끈질기게 대시했던 지난 세월들에 비하면 슈퍼맨은 게임으로 치면 이지모드에 불과했음. 당신의 아이를 갖고싶다고 속삭이면서도 죄책감은 들지 않았음. 그렇다고 저열한 기쁨을 느꼈다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의무를 다한다는 느낌으로 딕은 슈퍼맨과 2세를 계획했음. 인공자궁을 안착시키는 길고 고통스러웠던 시술도 사실은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음. 생각만큼 금방 아이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괴롭진 않았음. 결국 거듭된 시도와 실패 끝에 비로소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을 때에도, 딱히 어떠한 감흥이 들진 않았음. 그냥 이제 슬슬 모든 것을 마무리할 순간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

슈퍼맨이 고담의 저항군들을 '청소'했을 때, 바바라와 팀은 탈출할 수 있었음. 정확히 따지자면 이미 배트맨을 죽여버린 슈퍼맨이 굳이 그들까지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고 봐야함이 옳겠지만. 슈퍼맨의 오만함이 딕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했음. 딕은 바바라와 은밀히 연락을 주고받았음. 딕 본인에 대한 납치의뢰를 하기 위해서였음. 바바라는 딕의 계획을 듣고 네가 미쳤냐며 강하게 거부했지만, 딕은 자신을 이 지옥에서 꺼내달라는 말로 바바라를 설득했음.

요 몇년간 점점 강화된 철통같은 보안은 딕을 외부로부터의 공격에서 지키기 위한 것이지 딕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슈퍼맨은 딕을 허무하게 빼앗겼음. 뒤늦게야 납치사실을 통보받고 눈이 뒤집혀서 딕을 찾아 나섰지만, 저항군은 번거로운 인질극을 벌일 생각 따윈 애초부터 없었음. 그래서 슈퍼맨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레지스탕스가 남겨두고 간 딕의 시신 뿐이었음...

 

이번에야말로 슈퍼맨은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음. 폭주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때려부수다가 스스로 자해까지 시도한 슈퍼맨은 결국 스스로가 만든 폐허의 한가운데서 탈력해 쓰러졌음. 덕분에 일정 반경 밖에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반군세력은 제풀에 나가떨어진 슈퍼맨을 손쉽게 포획할 수 있었음.

슈퍼맨은 저항하지 않았음. 붉은 태양광을 켜둔 지하감옥에 갇힐 때에도 저항은커녕 죽여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음. 언젠가 들었던 딕의 숨소리와 심장소리와 어느날부터 거기에 더해지기 시작했던 아기의 작디작은 심장소리가 하루종일 그의 귓가에 울려댔음.

 

슈퍼맨은 끝까지 딕의 배신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음. 그래서 그가 기억하는 딕의 모습은 유일하고도 완벽했던 연인으로서의 모습뿐이었음. 그것이 그에게 일말의 위안이었을지 더욱 아득한 절망이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슈퍼은 밤낮없이 붉은 태양광이 켜져있는 감옥 안에서 날짜도 시간도 모른 채 하루종일 꿈만 꿨음. 딕이 살아있고 아기도 무사히 태어나서 정성껏 키우다가 둘째도 임신하고 단란하게 사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어쩐지 아이의 얼굴이 흐릿한 거임. 그 좋은 시력으로도 도저히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어떻게든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면 딕이 이미 죽었다는 현실이 무섭게 들이닥쳤음. 허무한 꿈은 순식간에 산산조각나고 좁은 감옥안에 갇힌 스스로의 처지를 새삼 깨닫는 거임.

몇날 며칠을 멍한 얼굴로 죽은듯이 얌전히 지내던 슈퍼맨은 가끔씩 화들짝 놀랐다가 미친듯이 머리를 쥐어뜯고 발광했음. 그래봤자 이미 초인으로서의 능력도 상실하고 몸도 약해졌으니 금방 지쳐 나가떨어질 뿐이었지만. 탈진해서 딱딱한 침대에 늘어진 슈퍼맨은 무력하게 눈을 감았음. 그리고 또다시 행복하지만 길게 이어지지 못할 꿈을 꾸기 시작했음. 영원히 반복될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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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urntS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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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한테 몽유병 비스무리한게 있었으면 좋겠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면 잠들었다가 두어 시간 후에 일어나서 유령처럼 저택을 돌아다니는 거ㅇㅇ;;; 그러다가 딕을 덮쳤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본인은 기억 못함(??)

 

기왕이면 딕이 브루스를 짝사랑하고 있던 중이었으면 좋겠다. 시작은 어느날 밤이었음. 딕이 자기 방에서 자다가 설핏 깼는데 브루스가 침대 옆에 서서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거임. 불도 켜지 않은 채 웬 시커멓고 커다란 인영이 침대 옆에 바싹 붙어 서있으니 어무리 대담한 딕이라도 기겁해서 놀랐겠지ㅇㅅㅇ;;; 화들짝 놀라서 브루스 뭐냐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놀란 가슴이 두근거려서 등줄기에 식은땀까지 흐를 정도였음. 그런데 브루스는 아무런 대답 없이 가만히 서있다가 터벅거리면서 방을 나서는거. 열린 문으로 나가는 발걸음은 어쩐지 실내화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음. 딕은 뜬금없고 비현실적인 상황에 멍뎅하게 눈만 깜박이며 브루스가 나간 문을 쳐다보았음. 뭐지. 꿈인가.

다음날 아침 식탁에서의 브루스는 여느때와 똑같은 모습이었음. 딕은 잠결에 헛것이라도 봤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음. 그날 저녁 고담의 거리는 유독 소란스러웠고, 두 사람은 다소 빽빽하게 패트롤을 돌고 새벽 늦게야 잠이들었음.

 

피곤했던 딕은 제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손길에 눈을 떴음. 겨울이었고, 아직 완전히 아침이 밝아지기엔 좀 더 시간이 남아있었음. 침침한 눈을 비비며 옆을 올려다보자 익숙한 실루엣이 자신을 향해 상체를 숙이고 있었음. 방안이 어둡고 잠결이 가시지 않았기에, 딕은 저를 향한 브루스의 시선이 미묘하게 제 얼굴을 빗겨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음.

브루스? 무슨 일이에요? 딕이 졸린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물었고,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브루스의 손이 귀와 뺨과 입술을 느릿하게 스쳤음. 명백하게 성적인 뉘앙스를 담은 손길에 딕은 멍하니 눈을 깜박였음.

브루스...? 팔꿈치를 짚으며 상체를 조금 일으키려 하는데 브루스가 조금 더 몸을 가까이 숙이더니 부드럽게 딕의 뒤통수를 끌어당기며 키스했음. 딕은 얼떨떨한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음. 뭐지.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아직 잠에서 덜 깬건가. 입술 사이로 밀고들어와 입 안을 휘젓는 리얼한 감각은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음.

입술이 잠시 떨어져나가고 가느다랗게 눈을 뜬 딕은 문자 그대로 코앞에서 저를 내려다보는 브루스의 얼굴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음. 너무. 지나치게 가까웠음. 서로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까지 서로의 얼굴에 닿을 지경이었음.

뒤늦게 가슴이 쿵덕거리며 뛰기 시작했음.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지. 딕이 뭐라고 어물어물 말문을 열기도 전에 브루스가 다시 키스해왔음. 명성이 자자한 브루스 웨인의 키스는 정말이지 황홀했음. 딕은 따지고 생각하고 할 것도 없이 브루스의 목에 두 팔을 감으며 매달렸음.

 

....공계니까 씬은 일단 생략-_-;;; 아무튼, 아무리 상대가 브루스라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참....지나치게 무방비했다 싶었음. 저녁나절 내내 몸을 혹사시키고 난 후의 새벽이라서 그런가. 스스로의 신변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경계심마저 허물어져버린 것처럼, 딕은 저를 안는 브루스에게 맞춰 허덕이기에만 급급했음. 브루스가 다소 아프게 깨물어서 자국을 남길 때라든지, 성급하게 진입하는 바람에 통증이 느껴질 때조차도 딕은 브루스를 거부하지 않았음. 분명히 패트롤은 같이 돌았는데, 유난히 소란스러웠던 지난밤도 배트맨의 스테미너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인지. 브루스는 딕이 녹초가 될 때까지 몰아붙였음. 어쩌면 딕이 남자와의 관계는 처음이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딕은 마지막에는 거의 납작 깔린 채 앓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만 했고, 제가 언제 잠들었는지도 인지 못한 채 기절하듯 잠들어버렸음. 그리고 느즈막한 오전에 깨어난 딕은 여기저기 결리고 뻐근한 근육통에 몇 분간 이불 속에서 끙끙거려야 했음.

소금뿌린 달팽이마냥 꿈지럭거리다가 간신히 눈을 뜨고 보니 옆자리는 비어있었음. 순간적으로 불쑥 드는 서운함은 채 인지하기도 전에 빠르게 사라졌음. 대신 새삼스러운 부끄러움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들뜬 기분이 딕의 머릿속을 온통 휘저었음. 딕은 귀 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눅눅한 이불에 박았음. 어떡해. 어떡해. 미쳤나봐. 지난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도 그렇지만 브루스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대?;;; 격렬했던 지난밤을 잠깐 떠올린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렸음. 딕은 손등으로 제 뺨을 식히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음.

 

머릿속에서 자꾸만 리플레이되는 어젯밤의 정사로부터 신경을 돌리기 위해 딕은 현실적인 고민에 집중하기 시작했음. 이제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아젯밤의 일이 브루스와 나 사이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딕 본인은 꽤 오래 전부터 브루스를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브루스는 자신을 피후견인이자 동료이자 가족으로만 여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브루스도 지금까지 나를 연애감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평소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을 통해 가볍다는 평을 듣고 있는 브루스였지만, 딕은 브루스가 얼마나 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지 잘 알고 있었음. 브루스는 결코 가벼운 감정으로 자신을 안을 사람이 아니었음.

딕은 뻐근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아래층으로 내려왔음. 그리고 브루스는 어제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모습과 말투로 딕을 대했음. 마치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브루스에게 첫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전전긍긍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브루스는 태연한 모습이었음. 늦게 일어났다고 타박하는 브루스의 목소리는 무심하기만 했음. 소리도 없이 다가온 알프레드가 아침인사와 함께 식사할 거냐고 물었고, 딕은 눈에 띄게 당황해하면서 네, 하고 대답했다가 이내 아니라고, 괜찮다고 번복했음. 어젯밤 일에 신경 쓰느라 하마터면 알피가 곁에 있는지도 모르고 이상한 얘기를 꺼낼 뻔했다 싶었음. 신문 너머로 딕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브루스가 아침 정도는 제대로 챙겨먹는 게 좋을 텐데,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음. 그리고 딕이 뭐라고 대답하거나 말을 붙일 새도 없이 곧바로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음. 딕은 브루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다가 머뭇거리면서 멈췄음.

뭔가 이상했음. 설렘으로 두근거리던 가슴이 쎄하게 가라앉았음. 다시 생각해보면 어젯밤은 그야말로 갑작스러운 해프닝이었음. 사전에 그 어떤 대화나 합의도 없었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 따위도 전혀 없었음. 피로와 잠결에 판단능력이 둔해져서 휩쓸려버린 것처럼. 어쩌면 자신이 멍청한 짓을 저지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떠올랐음. 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동안 기사를 다 읽은 브루스가 신문을 차곡차곡 접어서 테이블에 내려놨음. 그리고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다가 아직까지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딕의 시선을 마주하고 의아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음. 무슨 일이냐고, 괜찮은 거냐고 묻는 목소리는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뉘앙스여서, 딕은 여기서 자신이 어떻게 반응해야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었음. 브루스는 설마 어제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은 걸까?

"브루스, 어젯밤에 말이에요..." 머릿속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충동적으로 말을 꺼낸 딕이 입술 안쪽을 깨물었음. 브루스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딕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음. 어젯밤에 뭐냐고, 패트롤 돌 때를 말하는 거냐고 되묻는 질문에 딕은 고개를 저었음. "아뇨, 말고. 새벽에요." 갑자기 자신이 엄청나게

질척거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따지듯 말문을 열었던 목소리가 뒤로 가면서 점점 기어들어갔음. 브루스는 고담에서 가장 핫한 셀러브리티였고, 그의 재산과 지위와 명성과 외모를 보고 그를 노리는 사람은 두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였음.

문득, 브루스가 배트맨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밥먹듯이 갈아치워대던 모델들이 떠올랐음. 브루스 웨인과의 하룻밤이 무슨 트로피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하며 가십지에 떠벌리던 한 골빈 금발아가씨의 인터뷰에, 브루스는 일말의 경멸조차도 아깝다는 양 차가운 표정으로 일별했을 뿐이었음.

딕은 숨이 갑갑하게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음. 저를 쳐다보고 있는 브루스의 표정이, 마치 할 말이 있으면 제대로 하라고 추궁하는 것처럼 느껴졌음. 그래서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음.

딕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웅얼웅얼 대답했음. 그리고 하루종일 자괴감과 참담함으로 우울해하면서 브루스의 시선을 피해 슬금슬금 겉돌아야 했음.

 

컨디션이 영 꽝이었던 딕은 패트롤 중에도 영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자잘한 실수를 반복했음. 그리고 딕이 그렇게 이상하게 구는 것을 배트맨이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음. 무슨 말 못할 고민이라도 있나보다 싶어서 웬만한 실수는 눈감고 넘기려던 배트맨이 막바지엔 정신 차리라고 나지막하게 질책할 정도였으니, 딕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음.

두 사람은 거리 정찰을 평소보다 조금 일찍 끝냈음. 딕은 케이브로 돌아오자마자 씻고 옷 갈아입고 제 방에 틀어박혔음.

일찌감치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운 딕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계속 뒤척여야 했음. 잠자리에 일찍 들면 뭐하나. 평소보다도 훨씬 늦은 시각까지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돌아눕다가 겨우 잠이 들락말락 하려는 순간에, 방 문이 조용히 열렸음.

카펫이 깔린 방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발소리. 침대에 비스듬히 걸터앉는 기척과 체중에 눌린 매트리스 귀퉁이가 살짝 기울어지는 느낌. 오랜 자경단 생활로 인해 야생동물 수준으로 벼려진 경계심은, 익숙한 상대를 향해서는 그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음. 귓가에 서늘한 손가락이 닿았음. 잠들지 못하는 밤에 지친 딕은 그 손길에 이끌리듯 눈을 떴음. 어둑어둑하게 역광을 드리운 실루엣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음.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쓸어넘겨주는 손길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음. 멍하니 브루스를 올려다보고 있던 딕은 이내 울컥 화를 내며 브루스의 손을 밀어냈음.

당신 뭐냐고, 왜 또 왔냐고. 나가라고. 보기 싫다고. 먹먹하게 잠긴 목소리가 원망을 가득 담고 거부의 말을 쏟아냈음. 브루스의 손을 매섭게 쳐내려던 딕의 손목이 붙들렸고, 그 손을 떼어내려던 반대편 손목마저 붙잡혔음. 짧은 실랑이가 이어졌음. 당신 싫다고, 진짜 싫다고, 최악이라고 쏘아붙인 것 치고는 별로 길지 않은 반항이었음. 브루스의 입술이 딕의 눈가에 닿았음. 딕의 손목을 잡아누르고 있던 손을 풀고 그 대신 조심스레 뺨을 감쌌음. 딕은 브루스를 밀어내는 대신에 그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음. 아까는 왜 그랬어요. 나 정말로 상처받았어요.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훌쩍거리는 울음소리가 섞였음.

딕은 몇 번이나 키스해달라고 졸랐고, 브루스는 그 때마다 응해주었음. 무척이나 거칠었던 어젯밤과 다르게 딕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조심스럽고 다정했음.

 

브루스가 어제보다 훨씬 부드럽게 안아주기도 했고, 아무런 경험 없이 맞이한 처음에 비하면 딕도 조금이나마 익숙해지기도 했고. 그래서 오늘은 어제처럼 딕 혼자 일방적으로 나가떨어지진 않았음. 정사가 끝나고도 딕은 브루스에게 칭칭 팔다리를 감으며 달라붙었음. 가지 말라고. 내 침대에서 같이 자자고. 놔주지 않을 거라고 찐드기처럼 달라붙은 딕은 기어이 브루스가 제 옆에 누워 팔베개까지 대주도록 만들었음. 그래봤자 곤히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는 여지없이 비어있는 침대에서 혼자 눈을 떠야 했지만-_-;;;

딕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눈만 깜박거리다가 울컥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거칠게 손등으로 문질렀음. 짜증나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음. 사람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냐고.

베개에 얼굴을 쳐박고 브루스를 욕하며 찔찔 눈물을 짜낸 딕은 그러고도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올 수 있었음. 붕어처럼 퉁퉁 부은 눈두덩이며 새빨개진 흰자위가 제 눈으로 보기에도 볼썽사나웠음.

형편없는 얼굴로 알피가 차려준 아침을 미적미적 먹고 있으려니 브루스가 내려왔음. 무덤덤한 목소리로 아침인사를 하던 브루스는 딕의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제대로 잠을 못 잤냐고 물었음. 울컥해서 그걸 몰라서 묻냐고 대꾸하려던 딕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꾹꾹 눌러 삼켰음. 그리고 남은 음식을 쓸어담듯 먹어치우고 식탁에서 일어났음.

 

그날 밤, 딕 제 방 문을 잠갔음. 일찌감치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들만 하면 불쑥불쑥 서러움과 화가 치밀어 올랐음. 조금 있으려니 문고리를 달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애써 무시했음. 자자. 잘 거야. 문고리 소리는 금방 조용해졌고, 딕은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좀처럼 오지 않는 잠을 청했음.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애써 잠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정신은 점점 말똥말똥해지기만 했음...

딕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음. 미디어룸으로 가서 다큐멘터리라도 보는 게 나을 것 같았음. 기왕이면 해양생물이 나오는 걸로. 고래도 좋고. 펭귄도 좋고. 열대 산호초 섬이 나오는 다큐라든지.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치고 제 방을 나서던 딕은, 복도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있는 브루스의 모습에 움찔 놀라서 멈춰섰음.

"....브루스?"

조심스레 불러봤지만 브루스는 대답없이 멍하니 바닥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음. 겨울이라 바닥도 차가운데, 슬리퍼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음. 딕은 조심스레 브루스에게 다가갔음. 딕을 향해서 약간 고개를 돌리는 브루스의 시선은 딕의 얼굴을 향하지 않고 미묘하게 뒷쪽으로 빗겨가고 있었음.

"브루스. 왜 그래요? 안 자요?"

딕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면서 브루스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음. 바로 몇 시간 전에 느꼈던 짜증과 화는 간 데 없이 브루스가 걱정스럽기만 했음. 브루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음. 딕은 빠르게 브루스의 상태를 깨달았음. 몽유병이구나.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젯밤과 그저께 밤의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이었는지도 알게 되었음. 브루스가 저를 감정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두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따지고 실망하고 화낼 일이 아니었음. 애초에 브루스로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까. 브루스가 제 마음을 갖고 놀았다고, 자신이 브루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리고 놀아났다고만 생각했던 딕으로서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음.

기왕에 벌어진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브루스를 방으로 데려다 놓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딕은 브루스의 팔을 슬슬 잡아당겼음. 괜히 이대로 방치해 뒀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안되니까. 딕은 침착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면서 브루스의 손을 잡아 끌었음.

그런데 이 양반이 두어 걸음 걷는가 싶더니 제자리에 서서는 꼼짝도 안하는 거임. 말 안 듣는 숫나귀도 아니고, 힘은 또 얼마나 센지 웬만큼 세게 잡아당겨서는 옴짝달싹 하지도 않았음. 딕은 초조하게 복도 너머를 돌아보았음. 브루스가 사용하는 마스터 스위트룸은 중앙 계단을 기준으로 반대편 끄트머리였음.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한 대 후려쳐서 기절시킨 다음 들춰메고 가는게 낫지 않을까.

딕은 무심코 떠올린 생각을 애써 고개를 저어 떨쳐내고 브루스의 팔에 팔짱을 꼈음. 브루스, 들어가서 자요. 요새 스트레스가 심한 거예요? 왜 자는 시간까지 제대로 못 쉬고 이러고 있어요. 알피가 걱정할 거예요... 어차피 알아들을 리도 없는 말이었지만 딕은 안타까운 마음에 거듭 말을 걸었음. 난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복도는 싸늘했고, 딕은 이제 진심으로 브루스가 걱정되기 시작했음. 방 밖으로 돌아다닐 거면 슬리퍼라도 신을 것이지, 이게 뭐야. 괜히 속상한 기분이 들었음.

"안 되겠다. 내 방이 가까우니까 내 방으로 갈래요?"

딕은 브루스의 팔짱을 끼고 반대편으로 돌았고, 여태 망부석처럼 꼼짝도 않던 브루스는 웬일인지 딕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뒤로 돌았음. 순간 지난 이틀간의 정사가 떠올라서 잠깐 멈칫했지만, 그렇다고 브루스를 이렇게 밑도끝도없이 복도에 세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딕은 브루스를 데리고 제 방으로 들어왔고, 제 침대에 눕혔음. 그나마도 그냥은 안 누우려고 해서 제가 먼저 침대로 올라가서 브루스를 잡아당겨야 했지만-_-;;;

브루스가 제 옆에 나란히 눕자 딕은 잠시 긴장했지만 오늘 밤의 브루스는 별로 성적인 접촉을 하지 않았음. 모로 누워서 딕의 허리를 끌어안고 딕의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은 채 금방 잠들었을 뿐이었음. 딕은 조심스럽게 브루스를 끌어안은 채 그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음.

그리고 깜박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 깨어났을 때, 브루스는 이미 딕의 침대를 나가고 없었음.

 

그날부터 사흘간 브루스는 딕의 방에 들러서 두어 시간 정도 잠들었다가 새벽녘에 제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했음. 물론 다음날에는 그러한 제 행동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딕은 제 침대에서 자다가 낯익은 기척이 느껴지면 당연한 듯 옆자리를 내주었음.

그러다가 나흘째 되는 날, 딕이 브루스를 위해 이불을 들춰주며 꾸물꾸물 옆으로 옮겨 누웠다가 자연스럽게 제 품으로 파고드는 브루스를 다독이며 끌어안았는데, 제 등을 어루만지는 브루스의 손길이 어쩐지 농밀한 거임. 자려고 눈을 감았던 딕은 당황해서 다시 눈을 떴음. 제 목에 뺨을 부비던 브루스가 쇄골과 목과 턱에 키스하는 것이 느껴졌음. 딕이 당황해서 허둥거리는 사이에 잠옷 상의가 벗겨졌음. 잠기운에 취한 몸이 익히 경험했던 애무에 서서히 반응하며 깨어나고 있었음. , 이러면 안 되는데. 딕은 흐느적거리는 손으로 브루스를 밀어내려 했음. 지금의 브루스는 말하자면 심신미약 상태나 다름없으니까.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는 상대와 관계를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음.

그런데, 그렇기는 한데, 며칠 전 복도에 우두커니 서있는 브루스를 잡아끌 때도 느꼈지만 브루스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참 힘이 셌음. 아니 뭐, 솔직히 말해서 힘이 세긴 해도 딕이 작정하고 저항하면 어찌어찌 밀어낼 수야 있겠지만, 빌어먹을 놈의 키스가 너무 끝내줬음. 단숨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감각에 딕은 몸서리쳤음. 브루스는 입술을 겹친 채 능수능란한 손으로 딕의 성감대를 자극했음. 다소 거칠다 싶을 정도로 꾹꾹 눌리고 비벼지는 중심부조차 아릿한 쾌감을 느낄 뿐이었음. 빠져나가려고 꿈틀거리면 꿈틀거릴수록 빈틈없이 밀착한 채 내리누르는 브루스의 단단한 몸에 비벼지면서 오히려 흥분감만 고조되었음. 딕은 아연해서 눈을 질끈 감았음. 이대로 나 잡아 잡수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한데. 달달 떨리기 시작한 몸은 이미 노골노골하게 풀린 채 브루스의 애무에 달큰한 신음을 흘려대고 있었음.

나 이렇게 자제력이 약한 타입이었던가. 딕은 헐떡거리는 와중에도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음. 솔직히 말해서 브루스가 만약 지금 이 순간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멈추기라도 한다면, 멈추지 말고 계속해달라고 애원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음.

결국 딕은 근 나흘만에 브루스에게 허리가 녹을 만큼 안겼음. 그리고 다음날 아무 것도 모르는 브루스와 마주칠 때마다 혼자 민망해하며 얼굴을 붉혀야 했음.

 

아무튼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도대체 제정신도 아닌 사람 데리고 뭐하는 짓이야ㅜㅜㅜㅜ;;;; 하면서 땅파는 딕이 보고싶다. 가끔 브루스가 심하게 해대면 다음날 하루종일 허리가 뻐근할 때도 있겠지. 에고에고 영감처럼 앓는 소리 내면서 허리를 통통 두드리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본 브루스가 진지하게 괜찮냐고 어디 다치기라도 했냐고 걱정해주는 바람에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라서 대답도 못하고 어버버 어버버버 했으면 좋겠다.

한편 브루스는 언제부터인가 피곤할 때면 깊게 잠들지 못하고 기억나지도 않는 꿈속을 헤매곤 했음, 안개라도 낀 것처럼 뿌옇고 띄엄띄엄하던 하던 이미지는 날이 갈수록 선명해졌는데, 그 분위기가.... 십대시절에 야릇한 꿈을 꾸던 느낌이랑 비슷해서 괜히 떨떠름해지는 거임.

원래 예민한 구석이 있는 브루스는 피로가 심할 때면 제대로 잠을 못 자곤 했음. 그렇게 수면부족에 시달리다 보면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 그러면 그 다음날에는 더욱 신경이 곤두서고.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는 더더더더 심해지고. 결국 밤에 제대로 자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곤 했음.

하지만 요새는 약간 달랐음. 일단 베개에 머리를 기대고 나면 잠깐 뒤척이다가 금방 잠들기는 하는데.... 그렇게 몇 시간을 자고 일어나도 제대로 피로가 풀리지 않고 묘하게 피곤한 느낌이었음. 그러면서도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거나 예민해지긴커녕 묘하게 신경줄이 느슨해지고 나른해지는 기분이라ㅋㅋㅋㅋ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거 참 희한했음.

 

그러던 어느날 밤, 피로에 지쳐 잠든 브루스는 예의 그 꿈을 꿨음. 뿌옇게 안개가 낀 저택을 거닐다가 장면이 휙 하고 바뀌었는데, 제 아래에서 달콤한 신음소리가 울리고 있었음. 누군가의 육감적인 몸을 열정적으로 탐하고 있던 브루스는 자신이 움직이는 족족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대를 더더욱 울려주고자 의욕이 충만했음. 안돼요 브루스, , 안되는.... 띄엄띄엄 칭얼거리는 목소리는 차라리 더 해달라고 조르는 것만 못했음. 일부러 세게 박아주자 숨도 제대로 못 쉬며 허리를 들썩이던 상대가 애처롭게 매달려왔음. 키스해달라고 조르는 입술은 축축하고 말캉했음. 브루스는 배부른 육식동물처럼 만족스럽게 웃었음. 따뜻한 물 속에 잠긴 것처럼 기분이 좋았음. 유연하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조임이 황홀했음.


그리고 아침에 깨어난 브루스는 제 방의 뽀송뽀송한 침구에 파묻힌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음. 꿈에서 깨면 언제나 흐릿하게 기억나지 않던 상대방의 얼굴이 갑자기 플래시백 되는 것처럼 팟, 하고 떠올랐기 때문이었음. 브루스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제 입을 가렸음.

꿈속에서 저에게 안겨 쾌감으로 울던 사람은 다름아닌 딕이었음.



-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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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urntS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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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윗 썰정리: 1인 1딕

DC/썰 2015. 11. 15. 15:05

DC는 뱃가에 11딕을 지급해줘야 한다. 네명의 딕이 각각 브루스 제이슨 팀 데미안의 파트너가 되었으면 좋겠다. 성격은 각 지구버전의 딕이어도 좋고, 넷이 전부 오리지널 딕이어도 좋다. 오리지널 딕이라면 각 파트너에 맞게 성격이나 성향이 조금씩 달랐으면 좋겠다.

 

베이스가 오리지널 딕이니까 기본적으로 제 가족들에 대한 애착이 있지만, 각자의 파트너에게 좀 더 맞춰주는 성격이었으면 좋겠다. 브루스의 딕은 거의 오리지널에 가깝긴 한데 나이트윙으로 독립한 적 없는, 브루스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장난으로라도 있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옆에서 머무는 성격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제가 생각하기에 아닌건 아니라고 제 할말 다 하고 필요하다면 멱살잡고 싸우기도 하는데 그래도 집을 나가는 일은 절대 없음...

그리고 브루스가 위험한 상황에서 딕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명령할 때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척 한다는) 것 정도? 브루스가 자기를 걱정한다는 걸 잘 알고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몸을 사리는(척 하는) ㅇㅅㅇ;;;

제이슨의 파트너인 딕은 대등한 동료이자 연인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낄낄거리면서 같이 잘 지내다가도 사소한 일로 수틀리면 투닥투닥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동하면 붙어먹기도 하는 관계. 슨이가 제 편인 딕을 죽이려고 들 일이야 없을테니 무기 없이 맨손으로 주먹다짐하고 툭탁거릴 때야 당연히 딕이 우세겠지. 사실 총이며 칼이며 스틱이며 각자 풀무장하고 싸워도 딕이 이길거 같긴 하지만-_-;;;

아무튼 제이슨을 바닥에 납작 깔아뭉개 제압하고 형님한테 개기지 말라며 시시덕거리는 딕을 제이슨이 침대에서 울려주는 것으로 복수하는 관계였으면 좋겠다. 엄청 집요하게 몰아붙여서 기어이 딕이 발발 기며 애원하게 만들고, 새벽에 지쳐 잠든 딕을 내려다보며 은밀하게 만족감을 느끼는 제이슨찡...

아무튼 제이슨을 위한 딕인 만큼 제이슨이 가차없이 살인을 저질러도 그것때문에 제이슨이랑 싸우거나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는데, 대신 제가 더 상처받은 표정으로 제이슨을 물끄러미 쳐다봤으면 좋겠다. 제이슨이 사람 몇 죽이고 나면 며칠간 우울하게 기분이 가라앉아서는 얼굴도 제대로 마주보려고 하지 않고. 이게 제이슨이 혐오스럽고 싫어서가 아니라 서로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문제로 비난하거나 싸우기 싫어서 그러는 건데, 그런 딕의 반응이 오히려 제이슨의 속을 긁겠지.

결과적으로 딕과 함께 팀업할 때는 살인 빈도가 줄어드는 제이슨이 보고싶다. 그 대신 폭력의 강도는 증가하겠지만ㅋㅋㅋㅋ 물론 눈치빠른 딕은 그걸 곧바로 알아주어야 한다. 모처럼 대규모 갱단을 상대하면서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넘어간 날에는 딕이 평소보다도 더욱 호들갑스럽게 제이슨한테 들러붙으며 애교를 떨어줬으면 좋겠다. 물론 제이슨은 맘같아선 쓰레기같은 새끼들 대가리에 총알 한방씩 박아주고 싶은걸 억지로 꾹꾹 눌러 참은거라 심기가 불편함... 그리고 그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딕을 침대에서 괴롭히는 걸로 풀어줘야 한다. 처음에는 우리 제이가 세상에서 제일 근사하고 멋지다며 뽀뽀 쪽쪽 날리고 마냥 받아주기만 하던 딕도 나중에는 힘들다고 그만해달라고 울었으면 좋겠다.

팀의 파트너인 딕은 거의 오리지널이랑 흡사한 타입이었으면 좋겠다. 좋은 형이자 멘토이고 손발이 잘 맞는 파트너에 팀의 의견에도 귀를 잘 기울여줌. 가끔 무모한 상황에 뛰어들긴 하지만 팀이 따라가고 커버할 수 있는 범위이고.

나이트윙과 레드로빈일 때에는 팀이 딕을 서포트하는 형태라면 딕 그레이슨과 팀 드레이크로서는 딕이 팀을 서포트하는 형태였으면 좋겠다. 이러저러한 업무로 바쁜 팀을 위해 샌드위치를 사오고, 답답한 사무실 말고 요 앞 공원에 나가서 같이 먹자고 살살 꼬셔내서는 바람도 쐬게 해줬으면 좋겠다. 밤에 자경단으로서 활동할 때도 자기 바이크랑 페어로 팀 바이크도 맞춰주고 개조해주고 가젯도 손봐줬으면 좋겠네. 같이 패트롤 돌다가 아이스크림이나 핫도그 하나씩 사서는 가고일상에 걸터앉아서 둘이 나눠먹고. 이런저런 시덥잖은 대화도 좀 나누다가 별 것 아닌 일로 낄낄거리면서 웃음도 터뜨리고, 그러다가 뽀뽀도 쪽 하고 나머지 패트롤 돌고 그랬으면 좋겠다.

데미안의 딕은 부모 겸 형제 겸 친구 겸 멘토 겸 동료 겸 연인일 것이다. 네 명의 딕들 중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하하 웃으면서 거뜬히 감당해내는 디키쨩... 항상 데미안의 가까운곳에 있어야 하겠지.

데미안도 자신만의 딕에게 흠뻑 빠졌으면 좋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직 어린애니까ㅇㅇ;;; 개인적인 동인설정이지만 데미안은 알굴가에서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이 자랐지만, 정작 특정 물건이나 사람에게 애착을 갖는 것은 금지된 채 살아온 거였으면 좋겠다. 자신이 갖고있던 물건이건, 좋아하는 옷이건, 어린시절 돌봐주던 유모라든지 시중을 들던 하인들까지도 데미안이 애착을 갖는 순간 사라지고 교체되는 일이 빈번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 어떤 것에도 정을 주지 않으려 했었는데 뱃가에 와서 살게 되면서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고 있었던 중이었으면 좋겠다. 탈리아 밑에 있을 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말 한마디면 가질 수 있었는데, 뱃가에선 아무리 떼쓰고 요구해도 가질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배우게 되고, 그 대신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게 되어도 그것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게 좋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만의 딕이 생겼으니 푹 빠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게다가 이 딕은 완벽하게 데미안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딕이어야 한다ㅋㅋㅋㅋ 소소하게는 제 접시의 콩을 알피 몰래 대신 먹어주는 그레이슨. 보기싫은 땡땡이나 줄무늬 셔츠는 죄다 버리고 데미안이 사준 옷만 입는 그레이슨부터 해서,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서 졸린 눈을 부스스 비비며 아랫층으로 내려온 데미안을 보고 '데미안 너 요새 키 큰거 아냐?'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그레이슨이라든지ㅋㅋㅋ 호들갑스럽게 데미안 손을 이끌고 키 재는 기둥으로 데려가서는 얼마나 자랐는지 체크해보고 '우와 데미안 지난번에 쟀을 때보다 2.5센티나 자랐어!! 브루스도 열 살 때에는 n피트 nm인치밖에 안 됐다고 했었는데!!' 하고 수선을 떠는 그레이슨... 물론 여기서 데미안은 '뭐 그정도 가지고 호들갑이야.' 라고 쿨하게 대답해야 함ㅋㅋㅋ

그 외에도 데미안을 훈련시켜주는 그레이슨이라든지, 필드에서 데미안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는 그레이슨이라든지, 데미안이 그 임무를 수행하다가 크게 다치고 며칠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제 침상 옆을 지키며 꾸벅꾸벅 졸고있던 그레이슨이라든지, 데미안의 손을 잡으며 네 덕분에 무사히 인질들을 구출했다고, 네가 정말로 자랑스럽고 얼른 부상을 털고 일어나서 나랑 같이 패트롤을 돌았으면 좋겠다고 조근조근 속삭이는 그레이슨이라든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에게 현장에서 물러나라고 하는 대신 도움을 청하는 그레이슨이라든지, 기타등등... 하루하루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딕에게 점점 푹 빠져버리는 데미안이 보고싶다.

 

제이슨이랑 데미안은 자신만의 딕에게 푹 빠져서 다른 딕한테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데, 브루스나 팀은 그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브루스라면 아무 생각 없이 필요할 때마다 딕들을 호출해서 이런저런 일을 맡길 것 같다. 브루스의 호출을 받은 딕들은 베이스가 오리지널 딕인 만큼 자신의 상황이 가능한 한(불가능하다면 가능하게 만들어서라도) 브루스의 호출에 응할 것이다. 그리고 브루스가 맡기는 임무를 흔쾌히 수락하겠지.

브루스도 언제나 당연한 듯이 딕들의 도움을 받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가끔씩 브루스의 연락을 받은 딕들이 곤란해하는 기색이라서 브루스가 의아해했으면 좋겠다. 혹시 여의치 않다면 다른이한테 연락하겠다고 브루스가 무뚝뚝하게 말하면 아니라고, 괜찮다고, 곧 가겠다고 대답하므로 브루스는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었음. 뭔가 사정이 있겠거니-_- 본인 입으로 괜찮다니까 뭐-_-;;;

그러다가 하루는 빡친 데미안이 브루스한테 그레이슨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저를 통해서 얘기하시라고 돌직구로 말해서 브루스가 그제야 아.... 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요새 제이슨이나 팀도 영 표정이 안 좋았는데 그거 때문이었나 싶고, 본인은 정말 생각도 안하고 있었던 터라 당황스러운 거.

존경하는 아버지한테 대들 정도로 빡친 데미안 옆에서 항상 데미안 편이던 딕이 어쩔 줄 몰라하며 '아버지께 그런식으로 말하면 어떡해 데미안;;;' 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바람에 데미안이 더더욱 짜증났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날 이후로 브루스도 무분별하게 딕들을 호출하는건 자제하겠지.

 

브루스가 무의식적으로 이 딕도 데려다가 일시키고 저 딕도 데려다가 일시키고 그런 거였다면, 팀은 좀 더 자각을 갖고 다른 딕들을 눈여겨보는 거였으면 좋겠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딕은 딕들 넷 중에서 제일 행복해 보이는데, 다른 뱃패밀리들이 각자의 딕을 대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드는 거였으면 좋겠다.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텐데. 나라면 절대로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들지 않을텐데. 나라면 좀 더 딕을 행복하게 해줄텐데. 이런 생각이 점점 강해지는거...

특히 제이슨이나 데미안을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으면 좋겠다. 제이슨은 레드후드로 활동하면서 적도 많이 만들어놨고, 워낙에 몸 사리지 않고 과격하게 싸우는 스타일이라 그러한 제이슨과 팀업하는 딕 역시 네명의 딕들 중 가장 잦은 교전횟수를 자랑하겠지. 자연스레 소소한 부상도 달고 살 거고. 가끔씩 제이슨이 사람을 죽였을 때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 할거고. 밤에는 제이슨을 침대에서 받아내느라 그나마 남은 기력까지 쪽쪽 빨리고 있을듯ㅋㅋㅋ 막 다크써클이 턱까지 내려와서는 늙은이처럼 허리나 통통 두드리고 있고ㅋㅋㅋㅋㅋ 정작 딕은 제이슨과의 관계에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하고 있지만, 팀이 옆에서 보기에는 딕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서 못마땅한 거.

제이슨이 혼자 밖에서 구르고 다니는 건 알 바 아닌데 거기에 애꿎은 딕까지 말려들어 고생하는게 못마땅한 팀. 저럴 바에야 그냥 웨인저로 들어오는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함.

그러다가 저택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데미안이 제 딕을 하루종일 라이너스의 담요처럼 끌고다니는 꼬라지가 보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딕과 함께하려 들면서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잘난척 발싸까지 해대는 데미안을 보고있노라면 반듯하던 팀의 얼굴이 저절로 구겨짐. 격투훈련이랍시고 오후 내내 데미안이 체육관에서 비글짓하는 걸 받아주고, 후련한 표정으로 지쳐 잠든 데미안을 보듬어 안아다가 저택의 방으로 옮겨서 재워주는 딕과 마주쳤을 때, 딕은 데미안이 깨지 않도록 검지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대며 팀을 향해 미소지었지만, 팀은 딕이 피로한 기색을 감추고 있는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었음. 저 이기적인 꼬맹이야 당연히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어린애나 상대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리면 딕 본인의 훈련은 어쩌라고? 싶은 생각도 들고.

브루스의 딕은 겉으로는 무척이나 안정되고 여유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꽤나 브루스랑 부딪히기도 하고 싸우기도 자주 싸움. 브루스가 독선적으로 굴 때마다 그걸 받아주고 설득하는 것도 딕의 몫이고. 다른 뱃패밀리들이랑 사이가 어긋날 때 가운데서 중재하는 것도 딕의 몫임. 그리고 제 몸 돌보지 않고 무리하는 브루스를 케어하고 강제로라도 브레이크를 거는 것도 딕의 역할이었음.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은데, 더 큰 문제는 브루스가 딕의 연심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음.

브루스는 딕이 제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이렇게 가족처럼 파트너처럼 함께하는 관계에 만족하고 있었음. 그러므로 쓸데없는 연애감정을 끌어들여서 이 완벽한 관계를 망치는 것은 절대로 원하지 않았음. 그래서 딕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외면했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딕이 다른 사람과 연인관계가 되는 것이 묘하게 불편한 거임. 물론 딕의 마음을 외면한 것은 자신이니까 딕이 누구랑 연애를 하건 결혼을 하건 막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긴 함. 머리로는 알고 있음.

하지만 가슴으로는 미묘하게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수 없었음. 브루스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딕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엮이면 브루스가 싫어한다는 것을 민감하게 알아챘음. 그래서 스스로 타인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브루스가 대놓고 드러내진 않아도 내심 안도한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음. 브루스는 딕이 딱 지금 이 상태의 어정쩡한 거리에서 머물기를 원했고, 딕은 그러한 브루스를 위해 제 욕심을 고통스럽게 억눌렀음. 그리고 심적으로 고생하는 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팀은 그 누구보다도 딕을 안쓰러워 했음. 브루스가 비겁하게 느껴졌음. 나라면 절대로 저러지 않을 텐데. 딕이 저렇게나 자신을 사랑해준다면 당연히 그 마음을 받아들이고 두 배로 돌려줄 텐데. 이래저래 안타까움과 불만이 쌓여갔음.


아무튼 제 딕과 꽁냥꽁냥하게 연애질하면서 은밀하게 반란을 꿈꾸는 팀이 보고싶다ㅋㅋㅋㅋ 딕들도 그러한 팀의 성향을 알고있는게 좋다. 그래도 팀이라면 딕이 진심으로 싫어할 짓은 하지 않을테니까 다들 믿고 지켜보는 중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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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urntS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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